변비와의 긴 대화

변비와 약속 시간은 늘 정확하지 않습니다.

나는 작은 플라스틱 의자 앞에 앉아 먼저 인사를 건넵니다.

안녕, 오늘은 올 생각이 있니.

변비는 대답 대신 배를 아주 살짝 꾸르륵하게 합니다.

아주 외교적인 답변입니다.

의자 위 자두 주스가 참관인처럼 기다립니다.

펼쳐둔 책은 두 페이지째 같은 곳에 열려 있습니다.

고구마 측은 어제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합니다.

나는 너무 다그치지 않기로 합니다.

변비는 다그치면 더 멀리 숨는 기분이 듭니다.

대신 천장 타일을 하나씩 세어봅니다.

하나, 둘, 셋, 그 사이에 배가 또 한 번 말합니다.

그래, 듣고 있어.

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으면 별 생각이 다 납니다.

오늘 저녁 메뉴와, 내일 아침과, 오래된 흑역사까지 떠오릅니다.

변비는 그런 생각을 꺼내는 데도 재주가 있습니다.

우리는 결론보다 침묵이 긴 대화를 나눕니다.

나오는 쪽도 말이 있고, 안 나오는 쪽도 말이 있습니다.

몸은 가끔 아주 느린 속도로 고개를 끄덕입니다.

나는 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.

오늘 안 되면 내일 다시 얘기하면 됩니다.

변비는 나를 싫어해서 그러는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.

그냥 지금은 조금 바쁜 모양입니다.

물 한 잔을 마시고 오라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.

아니면 이 회의를 여기서 끝내자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.

어느 쪽이든 나는 잠깐 멍해집니다.

변비와의 긴 대화는 오늘도 의자만 조금 따뜻하게 합니다.